제주 제2공항, 이제라도 원점 재검토해야 한다

[고충석의 칼럼과 에세이 사이] (33) 어떤 철학으로 미래를 설계할 것인가

나라가 정상으로 돌아 왔다. 이재명 후보가 이 나라를 이끌어갈 지도자로 선출되었다. 과거 자치단체장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았던 역량과 연륜을 살려 이 시대의 난바다를 잘 헤쳐나갈 조타수가 되길 기도드린다. 대통령으로서 이재명의 성공은 이 나라의 성공이고, 더 나아가 역사의 진전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은 그간 계엄사태로 위축된 국민의 마음 밭, 곧 심전(心田) 속에 다시 희망과 신바람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 국민의 마음 속에 생기를 불어 넣는 것도 정치고 그 마음을 꺾는 것도 정치다. 우리나라 현대사가 이를 증명해왔다. 과거 고속 경제 성장이나 폭풍같은 민주화 진전도 다 국민들이 저절로 흥이나서 그 과정에 참여했기에 가능했던 변화다. 이 대통령에게 간곡하게 요청드린다. 국민들을 신바람나게 하는 정치를 해주시길. 누가 말했던가. ‘한국사람들은 신명나면 외삼촌에게 밭도 사준다고’ 

이제 현실로 돌아가 보자. 이재명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 다양한 정책 공약을 제시했다. 특히 국가 단위의 공약을 제외하고 지역별로 차별화된 공약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 공약은 대통령 임기 동안 각 지역이 지향하는 정책적 이정표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경기도는 반도체 산업 중심지로, 대전은 AI·우주산업 중심지로, 광주는 국가컴퓨팅센터 유치, 강원도 춘천·원주·강릉은 미래산업 선도도시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이 제시되었다. 울산에는 부유식 해상풍력 발전단지를, 경남 사천은 우주항공 복합도시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도 포함됐다. 이에 비해 제주는 탄소중립 선도 도시로의 전환이 강조되었을 뿐, 그동안 지역의 최대 현안이었던 제2공항 건설은 지역 공약에서 배제되었다.

다른 지역들의 경우 공항 문제가 적극적으로 공약에 포함되었다는 점을 보면, 제주의 상황은 더욱 뚜렷하게 대비된다. 광주의 군 공항을 무안공항으로 이전해 서남권 관문 공항으로 육성하겠다는 구상, 부산의 가덕도 공항 조기 추진, TK 신공항에 대한 모호한 입장 등은 각기 다른 온도차를 보여준다. 특히 제주 제2공항에 대해 명시적으로든 묵시적으로든 언급이 없다는 것은, 이 사업이 현 정부의 우선순위에서 사실상 제외되었음을 시사한다. 정부가 제주를 탄소중립 도시로 육성하겠다는 기조하에서는 제2공항 건설은 우선순위가 될 수 없다. 실제로 탄소중립과 대규모 공항 건설은 방향 자체가 충돌한다. 유럽에서는 탄소 배출을 이유로 근거리 항공 운항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제주보다 면적이 큰 이탈리아의 시칠리아는 아직도 프로펠러 항공기만을 고집한다고 한다.

현재 지방자치단체들이 요구하는 공항 건설 수요를 모두 합치면, 좁은 국토에 10여 개의 신규 공항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과연 이치에 맞는 일인가. 이러한 요구는 기후정의라는 문명사적 흐름에 반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제주의 경우, 이번 선거에서 성산읍 유권자들은 제2공항 건설을 약속한 김문수 후보를 선택했다. 반면 그 외 지역에서는 이재명 후보를 선택했다. 일부는 이를 견강부회라 비판할 수 있겠지만, 이번 선거 결과를 통해 제주도민의 여론은 어느 정도 방향성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민주당 집권으로 제2공항 문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제 제2공항은 지금 추진하려고 하는 환경영향평가 결과와는 별도로 원점에서 재검토되어야 하며, 그 이유와 방향을 차근차근 짚어야 할 때다.

첫째, 공항 문제는 왜 기존 공항 확장에서 제2공항 신설로 전환되었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이 논의는 제주국제공항의 이용객 급증에서 비롯되었다. 2010년대 초반, 제주를 찾는 관광객 수가 급격히 증가하며 연간 2000만 명에 달하는 이용객이 제주공항을 이용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공항 혼잡과 항공기 지연, 회항,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명절이나 휴가철에는 항공기가 장시간 지상에 대기하거나 회항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는 시민들이 불편을 노골적으로 체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2013년 제주공항 마스터플랜 수립을 위한 용역을 발주하고, 공항 기능 개선에 대한 본격적인 검토에 착수했다. 당시 논의의 중심은 '기존 공항의 확충과 개선'이었다. 활주로를 두 개로 늘리고 유도로를 확장하며, 관제 시스템 보완과 공군과의 공역 조정 등을 통해 기존 공항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하자는 방향이 우세했다.

그러나 2015년을 기점으로 정책 방향은 급격히 전환되었다. 이 시기는 중국인 관광객이 급증한 시기였으며, 정부는 기존 확장 방안 대신 갑자기 제주 동부 성산읍에 새로운 공항을 건설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문제는 이와 같은 방향 전환이 구체적인 기술적 분석이나 공개된 논의 과정을 거쳐 도출된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당시 국토교통부는 ADPi(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라는 국제 전문기관에 제주공항 확장 가능성에 대한 용역을 의뢰하고 보고서를 받았지만, 그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채 사실상 무시하고 ‘제2공항 건설’이라는 결론을 앞세웠다. 이후 성산읍이 제2공항 입지로 지정되고, 환경영향평가 및 기본계획 수립 절차가 이어졌지만, 왜 기존 공항 확충 방안이 폐기되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지금까지도 없다. “기존 공항 확장 이야기만 하더니 왜 갑자기 성산에 새 공항을 짓겠다고 하는가?”라는 국민들의 질문에 정부는 끝내 답하지 않았다.

공항 건설은 단순한 지역 개발이 아니라, 수조 원의 국가 재정이 투입되는 중대한 사업이다. 그렇다면 왜, 언제, 누구의 판단으로 정책 방향이 바뀌었는지에 대해 투명한 설명이 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제2공항 추진 과정은 보고서 은폐, 공론화 부족, 도민 의견 배제 등으로 일관되었고, 결과적으로 정책에 대한 신뢰는 크게 훼손되었다. 더욱이 ADPi는 전 세계 주요 국가에서 ‘신공항 건설보다 기존 공항 확장 및 현대화’를 우선 권고해 온 항공 인프라 전문기관이다. 그 기관이 수행한 다수의 연구사례의 핵심은 ‘제1공항 체제 고도화’가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예컨대 베트남 호찌민시의 탄손녓 공항에서는 기존 공항 남쪽 터미널 확장을 통해 연간 5000만명 수용이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였으며, 이는 신공항 건설보다 약 1조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는 방안이었다. 오만 무스카트 국제공항 역시 ADPi의 설계를 기반으로 단계별 확장을 통해 공항 수용 능력을 최대 4800만명까지 늘릴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2015년 국토교통부 의뢰로 작성된 ADPi 보고서는 관제 시스템 개선, 주기장 확대, 유도로 추가 등 비교적 단순한 설계 변경만으로도 제주공항 하나로 연간 4200만명 이상 수용 가능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기준을 적용한 합리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구성되었고, 세계 공항 운영의 평가기준에 부합하는 전문성과 공신력을 갖춘 자료였다. 보고서는 ‘기존 활주로 활용 극대화’(1안), ‘평행 활주로 신설’(2안), ‘남북 활주로 적극 활용’(3안) 등 세 가지 확장안을 제시하였으며, 이 중 새롭게 대두된 2안과 3안은 보다 정밀한 타당성 검토를 거쳐 수용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제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토부는 이러한 안들에 대한 전문가들의 검토조차 생략한 채, 바다 매립에 따른 환경 파괴, 막대한 토목 공사비, 항공기 간 충돌 위험 등을 이유로 ADPi의 방안을 일방적으로 배제하였다. 그야말로 관료적 독재의 한 전형이다. 왜 이럴 바에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용역을 발주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국토부가 해당 보고서의 핵심 내용을 공론장에서 축소·은폐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ADPi의 권고 자체가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 기술적 타당성과 무관하게 제2공항 건설을 밀어붙이려는 음모세력(deep state)이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만일 공항 정책 결정이 과학이 아니라 특정 그림자 집단의 이익 정치에 따라 좌우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과 해당 지역주민들이 떠안게 된다.

비슷한 시기 부산·경남 지역에서도 공항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ADPi는 김해공항도 확장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고, 박근혜 정부는 이를 수용하여 기존 공항 확장 방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기술적·경제적 분석보다 정치적 요구, 특히 선거를 앞둔 표심을 의식해 가덕도 신공항으로 급선회했다. 이처럼 국가 교통 인프라 결정이 과학이 아닌 정치에 의해 흔들리는 사례는 포퓰리즘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당시 공항 경제성 분석을 맡았던 KDI(한국개발연구원)는 가덕도 신공항이 B/C(비용 대비 편익 비율)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안전하게 공항을 지을 수 있는 넓고 멀쩡한 육지를 가까이 두고도 20km 떨어진 해상에 위험을 무릅쓰고 신공항을 짓겠다는 발상은 부산 시민과 국민을 기만하는 처사였다.

제주는 제2의 가덕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제주만의 자연을 지키고, 제주만의 지속가능한 미래 모델을 설계하려면 ‘되도록 새로 짓자’는 구시대적 토건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술적으로 가능한 기존 공항 확충 방안을 외면한 채 신공항을 선택하는 것은, 결국 미래 세대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재정 부담과 회복 불가능한 자연 파괴를 떠넘기는 결정이 될 것이다.

둘째, 공항 추진 과정에서 교통·환경·사회적 비용 등 다차원적 분석이 매우 부족했다.

공항 입지 결정과 추진 과정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정책 결정자 누구도 그 판단 근거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성산읍 입지가 사전에 비밀리에 특정되었다는 의구심과, 이후 제기된 일부 공직자 및 관계자들의 토지 매입 의혹은 정책 전반에 대한 신뢰를 크게 훼손시켰다. 공항 부지(약 170만 평) 지정 이전에 이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지 못한 것도 입지선정의 신뢰도를 떨어뜨렸다.누가 어떤 목적으로,어떤 규모로 토지거래를 했는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토지거래 규제는 사유재산 침해가 아닌, 공공선을 위한 정당한 투기 예방 수단이다. ‘누가, 왜, 어떤 분석을 통해’ 이 입지를 결정했는지에 대해 국민은 아직도 정확한 정보를 알지 못한다. 정부는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수준까지 지역사회와의 협의를 거쳤는지 답해야 한다. 입체적이고 타당한 근거 없이 기존 공항 확장 가능성을 배제한 채, 다섯 개 이상 마을을 이주시키고 수조 원을 투입해 신공항을 건설하겠다는 발상은 국민 세금에 대한 무책임이며 지역 공동체에 대한 폭력이다. ‘되도록 새로 짓자’는 방식은 개발시대의 토건 철학에 머문 발상이며, 직극히 반윤리적이고 반문명적이고 몰역사적인 사고방식이다.

경제적 측면에서의 건설비용을 현시점에서 계산하는 것은 무망한 일일 수 있다. 최근 가덕도신공항 부지조성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현대건설이 시공계약을 철회했다. 추가로 발생할 막대한 공사비, 계약기간보다 상당히 길어질 공사기간 등이 그 원인이라고 한다. ADPi의 추정에 따르면 제주공항 확장은 공항이 도심과 가까운 위치에 있고, 도로·버스·택시 등 교통 인프라도 잘 연결되어 있어, 새로운 공항을 짓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다. 반면 제2공항은 부지 보상, 활주로 및 터미널 신설, 접근 도로 및 교통망 구축, 환경 훼손 복구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은 예산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2단계 사업으로 계획된 공항 필수 시설 확장, 상업·문화시설 건립, 배후도시 조성까지 고려하면 총액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여기에 도민 간 갈등, 관과 환경단체 간 충돌, 지역 내 주민 간 분열 등으로 인해 야기되는 사회적 비용까지 화폐로 환산한다면 그 비용은 가늠하기조차 힘든 일이다.

또한 제2공항 건설의 전제 조건은 ‘항공 수요의 지속적 증가’이다. 그러나 이 전제는 이미 생명력을 상실했다. 국토교통부의 「제5차 공항개발 중장기 종합계획(2015)」은 2025년 제주공항 여객 수요를 4179만명으로 예측했고, 「제주 항공수요 조사연구(2014)」에서는 3939만명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실제 여객 수는 2019년 3139만명을 정점으로, 2024년에는 2960만명 수준까지 감소했다. 이를 고려하면 2025년 제주공항 공항이용자 수는 3000만명 내외로 예상된다. 이는 기존 예측치와는 약 1000만명의 괴리를 보인다. 이처럼 잘못된 수요 예측에 기반한 신공항 건설은 재고되어야 한다. 

작년 말 국토부와 공군이 합의를 통해서 기존 공역을 조정한 것도 기존 공항 확장론에 힘을 보태준다. 공역조정으로 제주를 오고 가는 하늘길이 넓어졌고 활주로 혼잡문제도 상당부분 해소되었다. 기술적·정책적 대안이 충분히 존재하지만 기존 공항 확충을 외면한 채 제2공항을 고집하는 결정은, 그 이면에 음모적 배경이 있지 않느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도 제2공항 예정지는 한마디로 지질학적 시한폭탄이다. 더욱이 생태학적으로도 공항 입지로 부적합한 지역이다. 처음에는 8개로 알려졌던 ‘숨골(용암 지형 형성 후 지하에 남은 공동)’이 최근 정밀조사 결과 150개 이상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숨골 지형은 땅속이 비어 있거나 약한 구조로, 이 위에 활주로를 건설하고 대형 항공기가 반복 이착륙할 경우 지반 침하, 지하수 고갈, 동굴 붕괴와 같은 재난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항공기 이착륙 중 지반 붕괴가 발생한다면 그 피해는 상상조차 어렵다. 뿐만 아니라 성산지역은 동아시아 철새의 주요 도래지로, 매년 수많은 철새들이 이곳을 찾는다. 철새와 활주로가 같은 공간을 공유하게 되면 조류 충돌(Bird Strike)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는 세계 항공사들이 가장 경계하는 사고 요인 중 하나다. 최근 무안공항에서도 조류 충돌 사고가 발생했으며, 이는 결코 예외적인 일이 아니다.

일반 주민들은 단순히 ‘공항 하나 더 생기면 좋은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기반이 되는 지질 구조와 자연환경이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이 문제다. 지금 우리가 예견된 재앙의 징후들을 외면한다면, 향후 수십 년간 자연재해와 구조적 사고, 복구 불가능한 생태 손실이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단순한 환경영향평가 한 장으로 갈음될 문제가 아니라, 제주의 존립 기반 자체를 뒤흔드는 중대한 위협이다.

끝으로 관광 수요 변화도 주목해야 한다. 2010년대 후반부터 제주관광은 이미 포화 상태에 도달했으며,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과잉관광 부작용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이제는 하와이나 베네치아처럼 관광객 수를 제한하는 고품질 관광 모델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새로운 공항 없이도 가능한 관광정책을 설계하고,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지속가능한 구조로 정책논의를 개편해야 할 시점이다. 단순히 수요에 따라 인프라를 늘리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제 제주관광의 방향성과 공항 정책의 철학을 깊이 성찰할 때이다.

현재 제주관광은 양적 팽창에만 치우쳐 있다. ‘과잉 관광’(Over-tourism)은 관광지의 매력을 저해하고, 재방문율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만든다. 무분별한 숙박시설 증가, 교통 혼잡, 환경 훼손, 주민 생활권 침해 등은 이미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관광객 수는 늘었지만, 제주의 삶의 질과 생태적 수용력은 점점 후퇴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세계적인 생태관광지로 부상한 섬들은 공항의 수를 늘리는 대신, ‘운영의 효율성과 지속가능성’에 중심에 두고 공항 정책을 설계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발리섬은 연간 18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을 응우라라이 국제공항 하나로 감당하면서도, 효율적인 슬롯 운영과 관광 총량제 도입을 통해 환경 부담을 최소화하고 있다. 몰타섬 역시 루카 국제공항 단일 체제를 유지하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밀집한 국토 전역의 생태적 균형을 보호하고 있으며, 무분별한 인프라 확장을 지양하고 있다.

유네스코 3관왕을 자랑하는 제주가 과연 이들 사례에 걸맞은 관광 전략을 갖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제2공항은 단순한 인프라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제주가 어떤 철학으로 미래를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다. 세계의 수많은 섬들은 공항 하나로도 충분히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뤄내고 있다. 제주는 이들보다 더 뛰어난 자연환경과 문화 자산을 갖추고 있으며, 공항 추가 건설보다는 기존 공항의 고도화와 질서 있는 관광정책 수립만으로도 충분한 대안이 가능하다.

제2공항은 제주다움을 훼손하고, 미래 세대에 막대한 재정 부담과 환경적 위험을 떠넘기는 선택이 될 수 있다. 지금이라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기존 공항 확충을 중심으로 한 정책논의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그것이야 말로 국가가 제주에 책임을 다하는 방식이며,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다.

끝으로 솔로몬의 잠언 한 구절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비전 없는 곳에 백성은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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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제2공항 10년 갈등 끝내달라”… 대통령실 찾은 시민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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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충돌’ 안전성 우려 제주 제2공항 조사범위 300m→2km 확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