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우리가 살아갈 제주”…국경·세대 넘어선 평화의 발걸음

[인터뷰] 2025 제주생명평화대행진 3일차
폭염 속 행진, 평화의 섬 지키는 이들의 목소리

2025 제주생명평화대행진은 7월30일부터 8월2일까지 3박4일간 강정마을을 출발해 안덕, 송악산, 애월을 거쳐 제주시까지 걷는 일정으로 진행된다.

2025 제주생명평화대행진 3일차 제주시 애월읍 곽지해수욕장에서 만난 제임스 씨(27). 햇살에 그을린 얼굴로 길을 걷는 그는 미국에서 나고 자란 중국계 미국인이다.

현재는 파트너가 있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지내고 있는 그는 지난 5월 한 달간 강정마을에 머무르며 직접 삶으로 평화를 체험했다.

제임스는 “반미군기지 운동과 동아시아의 군사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자연스럽게 강정 투쟁에 대해 알게 됐고, 언젠가 꼭 현장을 걷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대행진에 참가한 배경을 밝혔다.

제임스는 강정해군기지 문제뿐 아니라, 전 세계 미군기지 철수를 지지하는 활동가다. 그는 미국 시민으로서 자국의 군사주의적 외교 정책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외면할 수 없다고 했다.

1일 곽지해수욕장에서 만난 중국계 미국인 제임스씨가 인터뷰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임스는 “미군기지는 자주권 침해 문제를 동반한다. 왜 한국의 일부가 주한미군기지로 인해 ‘미국 땅’이 됐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며 날카롭게 지적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을 언급할 때에는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가자지구에서 굶어가는 아이들의 평화를 깊이 기원한다. 양국은 당장 휴전해야 한다. 전쟁은 누구에게도 해답이 될 수 없다. 나의 세금 일부가 그런 폭력에 쓰인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전했다.

기온 35도를 넘나드는 한여름. 피부가 탈 정도의 따가운 햇살 아래에서 행진은 쉽지 않지만, 그는 그 순간이야말로 연대의 힘을 보여주는 상징이라 했다.

제임스는 “춤추고 노래하며 평화를 외치는 이 행진이 너무 감동적이다. 뉴스에서는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 같은 참혹한 상황만 전해지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더운 날씨에도 걸으며 평화를 노래하는 것 자체가 희망이라고 생각한다”고 힘줘 말했다.

대안교육기관 보물섬학교 8학년에 재학 중인 이다연양. ⓒ제주의소리

대안교육기관 보물섬학교 8학년에 재학 중인 이다연 양(14)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평화대행진에 참여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다연 양은 학교 친구들과 함께 제2공항 반대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발걸음을 맞췄다.

작년에 비해 올해는 바람이 불어 그나마 낫다던 다연 양의 얼굴은 햇볕에 익어 발그레한 모습이었다.

다연 양은 “어렸을 때 갔던 송악산과 알뜨르였지만, 이번에는 훨씬 더 자세히 보고 느낄 수 있다”며 “대행진 중 진행된 기행 프로그램에서 이 곳이 스포츠타운으로 바뀐다는 얘기를 듣고 ‘왜 이런 소중한 곳을 의미 없는 장소로 바꾸려는 걸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고 했다.

다영 양은 제주의 난개발이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라며, 이를 막아서기 위해 길 위에 나섰다고 했다.

그녀는 “제주가 점점 평화롭지 못해지고 있다”며 “동식물은 물론, 원래 이곳에 살던 사람들도 피해를 입고 있다. 난개발의 부작용은 결국엔 사람에게 돌아올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수다를 떨며 친구들과 함께 걷는 행진이지만, 그 속에 담긴 진심은 분명했다.

다연 양은 “제주는 제가 태어나고 앞으로도 살아갈 곳이다. 그래서 더 평화롭게 만들고 싶다. 행진을 통해 저희가 이렇게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걸 제주도민분들도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보건의료노조 활동가 황홍원씨가 아름다운 곽지해수욕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제주의소리

올해로 ‘11회차’를 맞은 평화대행진에 ‘11번’ 참여한 황홍원 씨(48)는 강원도에서 온 보건의료노조 활동가다.

그는 2014년 처음 대행진에 참가한 이후, 빠지지 않고 강정에서 제주시까지의 길을 함께 걸었다.

홍원 씨는 “처음에는 해군기지가 주된 이슈였고, 이듬해에는 세월호 참사로 더 깊은 아픔을 안고 걸었다. 그 뒤로는 제2공항 문제까지…, 매년 변화하는 제주를 보며 꾸준히 함께해야겠다는 마음이 커졌다”고 말했다. 그가 매년 가장 무더운 때 제주를 찾는 이유다.

홍원 씨는 제주에서의 평화대행진이 가진 고유한 힘에 주목했다.

그는 “예전에는 시위가 격화되거나 폭력적인 이미지도 있었지만, 제주에서의 행진은 완전히 다르다. 자발적이고, 시민 중심이고, 아름답고 평화롭다. 이런 문화야말로 촛불혁명을 가능케 했던 배경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해로 11회차를 맞은 제주생명평화대행진. 

제주를 찾을 때마다 느끼는 안타까움이 있다고도 했다. 홍원씨는 “공항에 내리자마자 보이는 거대한 빌딩들이 너무 충격적이다. 자연이 제주의 진짜 가치인데, 담벼락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이런 난개발은 결국 관광객들도 떠나게 만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제주도민을 양분화한 제2공항 문제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제2공항은 필요 없는 공항이다. 공항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부터 개선하고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지, 개발로 또 다른 문제를 만드는 건 결코 막아야 한다. 제주의 평화는 이렇게 걷고 함께 외치는 이들의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올해 제주생명평화대행진은 7월 30일부터 8월2일까지 3박4일간 진행된다. 강정마을을 출발해 안덕, 송악산, 애월을 거쳐 제주시까지 걷는 일정으로, 마지막 날인 2일 오후 6시 제주시청 민원실 앞에서는 평화문화제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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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공항 없는, 난개발 없는, 전쟁과 폭력·차별 없는 세상 위한 ‘한 걸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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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은 끝나도 전쟁 위협은 계속”…강정서 다시 시작된 평화대행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