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제2공항 반대투쟁, 농민에겐 ‘생존권’ 문제였다
2017년 11월 28일 제주도청 앞에서 열린 ‘제주 제2공항 반대를 위한 온평리민 결의 및 규탄대회'에서 약 300여명의 온평리 주민들이 제2공항 건설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제주 제2공항의 예정지로 지정된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은 겨우내 자라는 무, 당근, 브로콜리, 양배추 등 제주에서만 재배가능한 월동채소의 주산지이자 제주 감귤의 보고 중 한곳이다. 제주 농민들, 특히 그 가운데서 공항이 들어서는 성산읍의 농민들은 지금껏 10년이 넘는 ‘투기광풍’의 피해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농사를 지어왔다. 성산 이전엔 공항이 들어올 거라던 소문이 무성했던 대정읍 일대가 그랬다. 그들이 제주에서 경작지를 잃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도 잘 아는 까닭이자, 10년 동안 ‘생존권’을 위해 싸워 온 이유다.
개발광풍 버틴 10년 넘는 세월
2010년대 들어 불어 닥친 중국자본 발 개발광풍에 이어 제2공항 건설사업까지, 투기자본의 칼끝은 10년 넘게 제주 동부를 정조준했고 땅의 주인은 점점 얼굴 모르는 제주 바깥사람들로 바뀌었다. 당시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깜짝 발표’라 강조했지만, 제주 제2공항 개발계획이 발표된 직후 제주도 스스로 밝힌 성산읍 전체 토지주의 외지인 비중은 이미 37% 수준이었다. 수산리·난산리의 경우엔 이 비율이 당시 이미 거의 50%에 근접했다.
많은 법인이 발표 이전 토지를 매입한 뒤 재매각해 차익을 챙겼는데, 심지어 이 중 몇몇은 공항 계획이 발표되자마자 청산했다. 정부로부터 사전 유출된 정보를 토대로 미리 개입한 투기사범일 가능성이 높지만 현재까지 국가적 차원의 대대적 조사와 처벌은 이뤄진 바가 없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해 10월 제주지역 시민단체인 제주참여환경연대가 발표한 예정부지 토지소유 실태조사를 통해 다시금 적나라하게 조명을 받은 바 있다.
제주참여환경연대는 당시 예정부지 내 2840필지의 토지대장을 전수 조사했는데 소유자 2108명 가운데 도외 지주의 비중이 60.2%에 달했다. 그리고 예정부지 내에만 884필지, 총 53만평의 농지가 있었다. <한국농정>도 그간 몇 차례 보도했듯 형태는 대개 ‘기획부동산’, 그리고 ‘쪼개기’다. 외부 지주의 수만 봐도 알 수 있듯, 농업회사법인의 탈을 쓴 부동산업자가 직접 땅을 구매해 투자자를 모으고 값을 크게 올려 지분의 형태로 땅을 파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이뤄졌다.
드론을 띄워 하늘에서 바라본 제주 제2공항 건설 예정지인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일대 모습. 대부분 임야와 밭으로 이뤄져 있다. 제2공항 건설이 강행되면 결국 농민은 삶의 터전과 함께 생업을 잃는다. 한승호 기자
더 이상 임차로도 농사지을 수 없어
사정이 이렇다 보니 농민들은 이제 농사 규모를 늘리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애초 농사의 도구가 돼야 할 농지의 가격은 이제 평당 100만원 안팎까지 올라 아예 접근할 수 없는 수준이 돼 버렸고, 임차료도 덩달아 두 세 배 오르면서 임차를 통한 농지 확보도 부담이 커졌다. 쪼개진 농지는 필지 하나에 주인이 여럿이고, 애초 투기 목적으로 구입해 땅의 관리나 임대-임차인 간 관계엔 관심이 없으니 임대 계약의 불안정성도 이루 말할 데가 없다.
돌이 많은 이곳에서 노지작물을 심기 위한 비옥한 필지의 기반을 완벽히 닦는데 수년이 걸리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꽤 치명적인 문제다. 제주농민들이 벌인 10년의 투쟁 역사 가운데 주요한 한 페이지로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이 지난 2021년 세웠던 ‘농지특별대책위원회’가 있었는데, 이는 이런 기획부동산이 주선한 땅에서 농사짓다 쫓겨나는 동료들의 현실을 보다 못한 농민들이 그 실태를 찾아 알리기 위함이었다.
이런 현실 속에 공항이 끝내 예정부지에서만 53만평의 농지를 앗아가고, 또 그 주변부지에서도 응당 따르는 개발사업들이 진행돼 더 많은 농지가 사라진다면, 농민들은 이제 성산에서 농사로 생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될 거라 보고 있다. 신산리에서 월동무 농사를 짓는 여성농민 홍현주씨는 공항에 대한 생각을 묻자 생산 물가 급등으로 인한 어려움부터 이야기한다. 명확한 이유가 있다. 농사 물가가 급등한 지금 생산성과 수익성을 유지할 방법이 사실상 규모화뿐인 상황에서, 지난 10년간 농지의 수급을 막아버린 개발사업이 농민들에게 너무나 큰 악재가 됐기 때문이다.
홍씨는 “공항 이야기가 처음 나올 때와 비교해보면 지금은 물가가 너무 많이 올랐다. 임차료도 올랐지만 농약, 비룟값, 외국인 인건비까지 두 배씩은 올랐다”라며 “많이 짓지 않으면 농사 빚을 갚지 못하니 더 많은 농사를 지어 빚을 갚으려 노력해야 하는데, 농지가 줄어들면 농사를 지으러 더 멀리 가야 하고, 우리만 가는 게 아니라 너도 나도 갈 것이고. 이미 비싼 임차료가 더 비싸질 것은 뻔하다”라고 내다봤다.
예정부지와 아주 가까운 농지에서 전부 임차로 월동채소를 경작하는 현호성씨는 그와 같은 ‘한창 나이의’ 고령농들에게 있어 일하는 삶의 의미를 설명하고, 평생 가져가야 할 농민이란 직업을 잃는 상황을 두려워했다. 현씨는 “내 나이 이제 60대 중반,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일을 계속해야 하는데 삶의 방식을 바꾸기엔 너무 늦었다”라며 “자기 땅이 좀 있는 농민들은 땅값이 올라서 농지를 팔면 돈을 좀 벌 순 있겠지만 그 농지를 절대 얻을 수 없을 것이고, 다시는 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2024년 7월 10일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열린 ‘제주 제2공항 기본계획 고시중단 촉구대회'에서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 소속 도민들이 제주 제2공항 건설 백지화를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부지만큼이나 또 사라질 감귤밭
사라질 농지는 부지 내 53만평만이 아닐 것이다. 특히 농민들은 예정부지 주변의 수많은 감귤 과수원이 공항 건설과 동시에 폐원을 면치 못할 거라 보고 있다. 무안국제공항 참사를 생각하면, 공항이 들어선 상황에서 항공기와 새를 부르는 감귤나무 중 무엇이 사라질지는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현재 관련 고시에 따라 공항 반경 8km 이내의 토지이용을 제한하는데, 특히 3km 이내의 지역에서는 사과·배·감의 과수원을 ‘조류유인시설’로 분류해 설치를 허용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해당 규제는 앞으로 더 강해질 가능성이 큰데, 무안공항에서의 제주항공 참사 이후 국토부는 지난 5월 관리구역을 현행 반경 8km에서 13km까지 확대 추진한다고 이미 확정했다.
국토부는 설치제한 대상에 ‘조류 유인 가능성이 높은’ 과수만이 포함될 뿐 귤은 해당되지 않으며 떨어진 귤을 줍는 조치 등만이 필요하다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당장 지난해만 해도 새가 귤을 쪼아먹는 것에 화가 났던 한 고령 농장주가 고의로 귤에 농약을 주입, 직박구리·동박새 등의 조류 200여마리가 폐사한 일이 있었을 만큼 새와 감귤은 가까운 사이다. 설령 귤을 수거하는 조치만을 적용한다고 해도 이는 인력이 부족해 허덕이는 우리 농업 현실을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탁상행정에 가깝다는 게 농민들의 생각이다.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 환경조사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오은주씨는 이런 문제의식 속에 지난여름 내내 활동가 여섯 명과 함께 반경 3km 내 실제 과수원 필지가 얼마나 있는지 전수조사에 나섰다. 위성사진과 부동산 정보를 일일이 대조해 모니터상에서 과수원 필지를 확인하고 실제 면적까지 계산하는 고된 작업이었다. 그 결과 이 구역 내 감귤밭은 총 2516필지로 190만평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음이 판별됐다. 제2공항 전체 부지 면적보다도 16% 큰 규모다.
오씨의 집은 수산리에서 귤 농사를 지었고 지금도 동생 오창현씨가 가업을 잇고 있다. 늘 귤을 접하는 그는 우리나라 농지 특성상 ‘과수원’ 지목의 필지 수보다 실제 과수원 수가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이 조사에 착수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조사 결과 2516필지 중 과수원 지목 위에 세워진 감귤밭은 55%에 불과했다.
오씨는 “귤 과수원을 과수원으로 보지 않는다는 국토부는 그 근거로 드는 ‘전문가 의견’이 무엇인지를 묻는 정보공개 청구에도 비공개 하고 있다”라며 정부가 당장의 사업 추진만을 위해 이 명백한 위험에 대한 고찰도, 이후 감귤 영농의 존속도 고민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