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참사 1년 앞…정부, 조류충돌 위험평가 지침 첫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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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성 예측·평가법 표준 제시… 이달 내 제정·공표
2021년 10월7일 새만금신공항 부지인 수라갯벌에서 오동필 새만금신공항 백지화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이 찍은 항공기 조류충돌 위기 사진. 새만금신공항 백지화공동행동 제공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년을 앞두고 정부가 공항 조류충돌 위험을 과학적으로 평가하고 저감하는 방안을 담은 지침을 발표한다. 기존에도 공항을 새로 짓거나 확장하고 주변 개발사업을 할 때 조류충돌 위험을 따지긴 했지만, 이 위험성을 예측하는 평가법을 표준화해 지침의 형태로 제시한 건 처음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기후부)와 한국환경연구원(KEI)은 지난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조류생태 보전과 항공안전의 공존지침 제정 정책토론회’를 열고, 지침안의 주요 내용을 공개했다. 이번 지침안은 지난해 12월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일어난 제주항공 참사 이후 상충 요소로 여겨졌던 ‘조류생태계 보전’과 ‘항공 안전’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 정부는 이달 안으로 지침을 확정해 공표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를 추후 공항 건설 및 확장의 전략·환경영향평가에서 ‘표준화된 방법론’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기후부와 국토교통부, 한국환경연구원은 이를 위해 앞서 두 차례 시민사회단체, 전문가, 관계기관과 포럼을 열어 방안을 구체화했고, 현재 지자체·항공사 등 65곳에 초안을 공유해 의견을 수렴 중이다.
지난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조류생태 보전과 항공안전 공존 지침 제정 정책토론회’에서 발제를 맞은 이후승 한국환경연구원 자연환경연구실장이 ‘조류생태 보전과 항공안전 공존을 위한 공항사업 환경성 평가(조류 관련) 지침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국환경연구원 제공
이날 발제자로 나선 이후승 한국환경연구원 자연환경연구실장은 지침안의 적용 범위와 평가 지역, 조류충돌 발생확률 평가법, 조류 서식지 관리방안 등을 소개했다. 주된 내용은 △공항 주변 개발 사업 때 조류 충돌 위험성 평가 의무화 △조류 서식지 훼손 때 ‘대체 서식지’ 조성 절차 구체화 △환경영향평가 때 조류생태와 항공 안전 간 상충화 검토 강화 등이다.
특히 이번 지침안은 기존에 미흡했던 조류 서식현황 조사를 철새의 회귀 본능 등을 반영한 ‘행동권 분석’으로 전환하고, 신규 공항 운영 때 발생할 수 있는 조류충돌 위험을 예측하는 표준 평가법을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이 실장은 설명했다. 현재 야생조류 모니터링은 개체 수·밀도 중심의 조사가 이뤄지는데, 이를 조류의 공항 예정지 인근 개체군 크기, 취식·휴식·번식지 위치, 신규공항 이동 정도 및 가능성 등 8개 항목의 종합 평가 방식으로 강화한 것이다.
조류충돌 추정 평가법은 2003년 영국 템즈강 하구 공항사업 위험성 평가 때 활용된 방안을 국내 상황에 맞게 도입해, 조류충돌 위험이 큰 기존 공항과 비교해 위험성을 3단계(상대적 높음, 동일, 상대적 낮음)로 평가하도록 했다. 앞서 지난 9월 서울행정법원이 국토부의 새만금신공항 건설계획에 대해 조류충돌 위험성을 과소평가했다는 이유로 계획을 취소한 바 있는데, 이런 ‘임의 평가’를 막자는 취지다.
지난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조류생태 보전과 항공안전 공존 지침 제정 정책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한국환경연구원 제공
또한 조류충돌 위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할 때 ‘누적영향 평가’ 방식도 도입한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서 ‘조류충돌 위험지역’으로 정한 공항 반경 13㎞ 밖에서 진행 중인 사업이라도 위험 지역에 영향을 미친다면, 기존 사업의 영향과 합산해 위험성을 판단하는 것이다. 이후승 실장은 “기존 공항 관리가 활주로 내 조류 퇴치에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개발 사업 단계부터 공항 반경 13㎞ 이내 조류 유인 요소를 차단하고, 관리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국제적 철새 생태계로서의 한반도의 가치’라는 제목의 발표를 한 이우신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반도는 전 세계 조류의 90%에 달하는 철새들이 지나는 생태적 요충지”라며 “기후부와 국토부가 이번 지침안의 법적 효력 강화와 기존 (공항 개발) 사업에 대한 소급 적용 문제를 심도 있게 검토해야 할 것”이라 당부했다. 한명실 기후부 환경영향평가과장은 “이번 지침이 법적 구속력을 가진 법령은 아니지만, 환경영향평가 협의 과정에서 기후부가 이를 근거로 (국토부에) 보완을 요구할 수 있는 판단 기준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