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판결은 다르다?...제주 제2공항은 앞서 이 판결문을 받아봤다
[새만금의 경고, 제2공항을 향하다] ④ 환경부 전략환경평가 반려 대칭
전북 새만금에서 추진되는 국제공항 사업이 법원의 판결로 멈춰섰다. 조류충돌 위험과 생태계 파괴, 부실한 환경영향평가, 군사공항 전용 의혹까지. 단순한 지역 갈등 차원을 넘어 대형 국책사업의 정당성과 타당성을 근본부터 되묻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새만금국제공항 예정 부지를 직접 찾아 생태계의 현 주소를 기록하고, 소송을 이끈 주민·환경단체의 목소리를 담는다. 더불어 조류충돌 위험성과 부실한 환경평가, 법원의 판결이 가진 의미를 짚고, 제주 제2공항과의 구조적 유사성을 5편의 기획으로 풀어낸다. / 편집자 주
바다 건너 새만금의 판결을 제주가 예의주시하고 있는 이유는 단순한 연대감 때문만은 아니다. 법원이 새만금신공항의 기본계획을 취소한 근거가, 불과 몇 해 전 제주 제2공항 환경영향평가 반려 사유와 거의 동일하기 때문이다.
두 공항을 가르는 차이는 '경제적 타당성' 뿐, 판결이 지적한 구조적 문제는 제주가 이미 경험한 현실이었다.
새만금신공항은 사업의 경제성부터 벽에 부딪혔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11일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 취소소송' 판결문을 통해 "새만금신공항의 B/C(비용편익비)가 0.479에 불과해 경제성이 없음에도, 지역균형발전 명분으로 예비타당성조사까지 면제받아 추진됐다"며 "공익이 환경 훼손 등 침해될 이익보다 명백히 우위에 있어야 정당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B/C란 '1'을 기준으로 이익이 비용보다 많을 때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지표다. 새만금의 경우 0.479로 절반에도 못 미친 반면 국토부가 제시한 제주 제2공항의 B/C는 2021년 기준 1.154로 산정됐다. 총사업비 7조3653억원, 편익 8조5010억원으로 계산된 수치다.
이 역시 신뢰성 논란은 제기된다. 제2공항 반대 단체들은 "국토부와 기재부가 구체적인 산출 근거를 공개하지 않아 산업 파급효과나 고용유발 지표가 과장됐을 수 있다"며 정확한 근거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 또 기존 제주공항과의 중복을 피해 제2공항이 국내선만 운항할 경우 편익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다만, 이러한 주장을 수용한다 하더라도, 새만금신공항과 제주 제2공항의 입지·수요 조건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주는 섬이라는 지역적 특수성이 있는데다가 항공 수요가 포화됐다는 점도 부인할수 없다.
그러나, 경제성을 잠시 뒤로 두면 두 공항이 떠안고 있는 환경적인 쟁점은 놀라울 만큼 닮아있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점, 돌이킬 수 없는 생태계 파괴를 감내해야 한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 한다.
총 69페이지인 새만금신공항 취소 소송의 판결문에서 경제성과 관련된 내용은 사업계획 경위까지 포함시키더라도 3페이지에 불과하다. 나머지 내용은 환경적인 쟁점이 주를 이룬다.
재판부는 새만금신공항의 입지 선정 과정에서 조류충돌 위험성에 대한 검토가 누락됐고, 이후 전략환경영향평가에사도 평가 기준을 달리해 결과를 축소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또 서천갯벌 등 세계자연유산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고, 정부가 제시한 저감 방안이 서식지 파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공교롭게도 이는 제주 제2공항이 2021년 7월 환경부로부터 통보받은 전략환경영향평가 '반려' 결정의 이유와 그대로 겹친다.
당시 환경부는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국립환경과학원 등 전문기관의 의견 검토를 거쳐 제2공항에 대한 반려 결정을 내렸다. '반려'란 중요한 사항이 누락되는 등 전략환경영향평가서가 적정하게 작성되지 않아 협의를 진행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경우 내려지는 결정이다.
환경부가 제시한 구체적인 반려 사유는 △비행안전이 확보되는 조류 및 그 서식지 보호 방안에 대한 검토 미흡 △항공기 소음 영향 재평가 시 최악 조건 고려 미흡 및 모의 예측 오류 △다수의 맹꽁이(멸종위기야생생물 Ⅱ급) 서식 확인에 따른 영향 예측 결과 미제시 △조사된 숨골에 대한 보전 가치 미제시 등 크게 네 가지로 추려진다.
이는 새만금신공항 판결문이 지적한 논리와 거의 일치한다. 조류충돌과 생태 파괴 가능성, 불완전한 평가 절차, 형식적 보완이라는 구조가 똑같다.
환경부가 반려 사유로 든 조류 보호구역에 대한 우려는 2019년 10월 전략환경영향평가 최초 보완 요구에서도 다뤄졌던 문제다. 철새도래지 자체를 폐쇄하지 않는 한 두고두고 논란의 여지가 남을 수 밖에 없다.
숨골에 대한 보전 가치는 새만금신공항의 갯벌 생태계와 치환된다. 숨골은 용암이 굳으며 생긴 틈새로 지하수 순화와 생태계 유지의 핵심 원동력이다. 한번 파괴되면 복원이 절대 불가하다는 점에서 갯벌의 가치와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국토부는 이후 '반려 결정의 보완 가능성을 검토하겠다'는 기존 문법에 없던 용역을 재개했고,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재보완 과정에 들어섰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보완될 수 없는 사안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제2공항의 경우 '주민 수용성' 이라는 가장 큰 과제가 남아있다. 허허벌판인 새만금신공항 소송에는 등장하지 않은 '공항 소음' 문제는 제2공항 입지에 있어선 결정적인 문제다. 당장 주민들의 피해가 예상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배경 속에서 제2공항과 관련된 여론조사는 지난 9년간 숱하게 진행됐지만, 어느 한 쪽으로 크게 쏠리는 법이 없었다. 사업 초기에는 찬성이 우세했던 반면, 절차적 타당성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최근에는 반대 의견이 오차범위를 넘어서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제2공항 사업 초기부터 줄곧 '주민 수용성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새만금신공항의 시비를 떠나 제2공항의 환경적 사안을 결코 가벼이 다룰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