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주로 대신 철새떼”…공항 무패신화 무너뜨린 새만금, 현장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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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의 경고, 제2공항을 향하다] ① 군산공항 인접 신공항 부지 실태

전북 새만금에서 추진되는 국제공항 사업이 법원의 판결로 멈춰섰다. 조류충돌 위험과 생태계 파괴, 부실한 환경영향평가, 군사공항 전용 의혹까지. 단순한 지역 갈등 차원을 넘어 대형 국책사업의 정당성과 타당성을 근본부터 되묻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새만금국제공항 예정 부지를 직접 찾아 생태계의 현 주소를 기록하고, 소송을 이끈 주민·환경단체의 목소리를 담는다. 더불어 조류충돌 위험성과 부실한 환경평가, 법원의 판결이 가진 의미를 짚고, 제주 제2공항과의 구조적 유사성을 5편의 기획으로 풀어낸다. / 편집자 주

전라북도 새만금신공항 사업 예정 부지에 서식 중인 새떼.  ⓒ제주의소리

새만금방조제가 완공된 이후 갯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자리는 땅이 메말라갔고, 땅을 일구던 생물들도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한때 소금기를 가득 머금은 비산먼지가 날리며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방조제 안쪽에 남은 갯벌 역시 바닷물이 제한적으로 들어오면서 정상적인 생태계가 유지되기 어려운 지경에 내몰렸다.

'단군 이래 최대의 국토개발 사업'이라는 구호로 추진된 새만금간척사업의 면적은 약 400㎢에 이른다. 서울 전체 면적(600㎢)의 3분의2에 달하는 수준이다.

'세계 최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33.9km의 방조제는 개발강국으로서의 상징과 동시에 전례 없는 생태계 파괴의 이름이기도 했다.

출입통제 경고문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내딛은 황량한 간척지. 잘개 쪼개져 널부러진 조개 껍데기와 소금이 어린 흙에서만 자라는 염생식물만이 과거 이곳이 갯벌이었음을 증명했다.

황무지 옆에 걸린 어색한 'OO수산' 간판은 과거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이들의 흔적을 짐작하게 할 뿐이었다.

전라북도 새만금신공항 예정 부지 입구에 진입을 경고하는 안내문 간판이 설치돼 있다. ⓒ제주의소리

전라북도 새만금신공항 예정 부지에 서식중인 염생식물. ⓒ제주의소리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초토화됐던 갯벌은 새로운 생태계의 보고로 재편됐다. 갈대와 염생식물이 함께 자라는 염습지는 기존엔 찾아보기 힘든 유형의 생태계다. 좁은 국토 안에서 뭍이란 뭍은 모두 농경지로 개간돼 온 터다.

곧게 자란 갈대 옆으로 마치 해조류와 같은 생김새의 해홍나물이 뿌리내렸다. 수분기 머금은 습지에는 금개구리가 뛰놀고, 그 옆으로는 삵의 발자국이 찍혔다. 천연기념물이며, 멸종위기종이며, 새만금 부지 내 법정보호종만 60여종에 이른다.

이 곳은 한때 지켜내지 못한 땅이었지만, 다시 새롭게 지켜야 할 땅이 됐다.

현장에 동행한 구중서 새만금신공항 백지화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2006년 방조제 공사가 끝나고 물이 들어오지 못하며 황폐해진 땅이었는데 보란듯이 소생했다"고 말했다.

구 위원장은 "한때 아픔이 서린 곳이지만, 지금의 새만금은 한 부지 안에서도 식생이 다르게 나타나는 고유의 가치를 지닌 곳이 됐다"고 부연했다.

전라북도 새만금신공항 예정 부지. 구중서 새만금신공항 백지화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이 손 끝으로 가리키는 곳에 활주로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제주의소리

전라북도 새만금신공항 예정 부지 내 습지. ⓒ제주의소리

차머리를 돌려 선 새만금 수라갯벌. 멀찍이서 부지런히 부리를 쪼는 새들이 눈에 들어왔다.

간척지 한복판에 형성된 바닷물과 민물이 맞닿는 기수역은 새들에겐 풍요로운 황금어장이었고 대규모 철새도래지의 형성은 필연이었다.

이 곳에선 세계적인 멸종위기종 저어새를 비롯해 황새, 백로, 가마우지 등 갖가지 조류와 마주할수 있다.

취재 당일 현장은 늦여름의 무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데다가 국지성 폭우 영향으로 새 무리가 쉽게 발견되지는 않았다. 이른 오전 시간대에 먹이활동을 한 새들은 햇볕을 피해 그늘에서 쉼을 갖곤 한다. 

다만, 공기가 차가워지며 철새 이동 시기가 도래하면 넓은 갯벌은 '새들의 천국'으로 변모한다.

새만금 일대는 동아시아와 대양주를 잇는 철새 이동 경로(EAAF)의 핵심 기착지로, 무수히 많은 새들이 드나드는 생명의 관문이다. 이와 연결된 서천갯벌은 202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는 새만금의 변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독립영화로서의 기록적인 관객 동원 성과는 차치하더라도, 영상 속에 담긴 새만금의 경이로운 생태계는 화제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수라>는 남겨진 이들의 냉혹한 현실과 다시 싸움을 이어가는 이들의 투쟁기를 그려냈다.

새만금의 생태계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 갈무리. 

새만금의 생태계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 갈무리. 

영화의 모티브가 된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장은 20여년 간 새만금 갯벌을 지키며 생태를 기록해 왔다.

그는 "20년 전 새만금의 생태계와 지금을 비교하면 1000분의 1정도만 겨우 보존됐다고 본다. 직접 눈으로 지켜본 입장에서 그렇게 표현해도 결코 과하지 않다"고 힘줘 말했다.

오 단장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진행된 사업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그 위치에서 책임지는 사람이 있는가"라고 울분을 삼켰다.

멀찍이 갯벌 너머로는 군산공항 활주로에 둘러쳐진 철조망이 눈에 들어왔다. 이따금 갯벌의 고요함을 깨고 군용헬기의 굉음이 메아리쳤다.

군산공항은 주한미군 공군기지로, 민간 항공편을 제한적으로 운항하고 있다. 군산을 기점으로 한 항공편은 하루 2~3편 정도에 불과하고, 이마저 좌석이 남아돌기 일쑤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 군산공항 바로 옆에 또 하나의 민간 국제공항을 짓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새만금신공항의 활주로는 현 군산공항의 활주로와 수평으로 놓이게 된다.

전라북도 새만금신공항 사업 예정 부지와 연결될 예정인 진입로. ⓒ제주의소리

전라북도 새만금신공항 사업 예정 부지에 서식 중인 새. ⓒ제주의소리

갯벌 위로는 활주로가 깔리고, 진입 도로와 터미널이 생길 예정이다. 군산산업단지와 연결된 도로에는 벌써부터 다소 이질적인 회전교차로와 진입로가 놓여있다.

근본적인 의문은 재판 과정에서도 온전히 해소되지 못했다. 법원은 주민들이 제기한 '새만금국제공항 기본계획 취소 소송'에서 환경영향평가 부실 문제와 조류충돌 위험성 등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대형 국책사업에 사법부가 직접 개입한 것은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법원은 예상을 빗겨간 판결을 내놓았다. 

글이나 기록만으로 전달하지 못한 진실은 갯벌 위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20년 전 새만금 방조제로 시작된 투쟁에서 새만금 신공항에 이르기까지, 갯벌 위에서 긴 시간을 버텨낸 이들은 다시 묻는다.

"정말 이곳에 공항이 필요한가. 이 계획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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